과학과 신앙과의 대화(과신대) 파사데나 2월 모임 후기
과학과 신앙과의 대화(과신대) 파사데나 2월 모임 후기
  • 김영웅
  • 승인 2019.02.23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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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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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은 이상희 교수님이 고인류학자로서 우리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역사적 연구 결과와 해석들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쓰신 작품이다. 작년엔 이 책이 총 6개 국어로 번역이 되었고, 5개 국어로 출판이 되었다. 굵직굵직한 상들도 여럿 몰고 왔다. TV와 라디오 방송 출연 기회도 선사했고, 이 책이 각광을 받는 시기와 겹쳐서 이상희 교수님은 학문적인 연구 성과로 테뉴어를 받으셨다. 자칫 따분할 수도 있고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미신 같은 잘못된 지식 때문에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만한 분야를 이렇게 재미있고 일반인의 눈높이에 딱 맞도록 이야기식으로 나왔던 책이 그 동안 존재했던가. 이 책 한 권으로 간략하고 재미나게 인류의 기원에 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독자로선 행운이다.

약 2시간에 걸친 열정적인 강의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류의 기원은 진화라는 개념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특정한 목적성 (이를테면 진보)을 가지지도 않고 무작위적으로 환경변화와 유전자 변이의 복합적인 상호관계에 의해 생겨난 좌충우돌의 역사다. 특히, 지금까지 잘못 알려졌던, 네 발로 기어다니거나 나무를 타고 다니던, 머리가 작은 원숭이가 어느 날 고등동물 (?, 인간이 가장 고등동물이며 진화의 종착점이라고 보는 건 잘못된 개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현재의 다른 생물들은 인간으로 진화하는 어디 즈음엔가 놓여 있다는 말이 된다. 다른 생물들은 불완전하고 인간이 가장 완전한 생물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건 진화에 관련된 책을 조금만 찾아서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로 진화(?)하기 위해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머리가 커지기 시작해서 현생 인류가 탄생했다는, 소위 단선적인 모델은 오류가 많다는 게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 교과서엔 그렇게 실려있고, 학교에서 그렇게 배운다. 오류의 이유는 부족한 증거자료를 부풀려 해석한 현생 인류의 한계였다.

우리가 ‘인류의 기원’ 하면 떠오르는 점진적인 그림 하나가 있다. 교과서에서도 나오고 여러 군데에서 아마 한 두 번쯤은 모든 사람이 봤을 것이다. 그 모델이 바로 오류가 많이 발견되어 수정되어야만 하는 단선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사건이라든지, 머리가 커지기 시작한 사건이라든지 하는 어떤 하나의 관점으로 인류의 진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인류의 기원은 어떤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가 시작하는 식의 점진적이고 단선적인 패턴이 아니다. 오히려 백인과 황인과 흑인의 피부색의 경계가 모호하듯 많은 화석기록과 혈청분석결과, 그리고 분자생물학적인 실험결과들이 누적되면서, 각 단계가 상당히 많이 중첩되어 있는, 소위 가지가 많은 나무 형태의 모델을 따른다는 게 현재까지 밝혀진 고인류학의 동태가 되겠다. 아름다운 하나의 수학 방정식으로 보여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좌충우돌의 역사. 바로 우리 인간의 역사가 되겠다. 우리 인간, 그렇게 고귀하거나 퓨어하지도 않다.

난 기독교인으로서 인간이 다른 생물체에 비하여 특별한 존재라고는 믿지만(하나님 형상), 그것은 결코 육체적인 기원과 그 발달, 진화 과정까지도 특별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부분까지 확장시키는 것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중세와 그 이전 시대의 우주관, 그리고 지금도 나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 중심의 세계관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교만, 그것이 바로 원죄의 의미 아니던가. 마지막 질의 시간에 나온 질문 중에 과신대에서 아주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질문이 하나 나왔었다. 페이스북 광고를 보고 처음 모임에 참석하셨던 분으로부터였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인간, 아담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창세기에는 인간이 여섯 째날 하나님이 직접 흙으로 만드시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밝혀진 ‘인류의 기원’에 대한 증거자료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모순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과학과 신학을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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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교수님의 ‘인류의 기원’은 물론 이런 질문에는 답을 할 수가 없다. 신학책이 아니라 고인류학의 대중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과신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난 번 모임부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과신대의 방향은 창조과학의 모순과 오류를 밝혀내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오히려 제대로 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성경 해석을 현대 과학의 눈으로 봤을 때도 모순이 없고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 제대로 할 수 있는 쪽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창세기가 신화라는 전제가 부득이하게 필요한데, 이게 참 난제다. 이성적인 문제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오래토록 각인된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다. 시대가 지나면서 바른 성경해석으로 진화가 진행되기 위해서 과신대는 바르게 각인된 성경관을 가진 후대들을 많이 양성해야만 한다. 진화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집단, 공동체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시간이 흐르고 후대가 평가할 사항이다. 우리가 늦은 밤까지 모여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런 작은 변화에 동조하는 것이다.

약 2시간에 걸친 강의였는데, 어젯밤 3시간밖에 못 주무셨음에도 열정적으로 나눠주신 이상희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다음 파사데나 과신대 모임은 3월 27일 수요일 저녁 7시 같은 장소에서 ‘아담의 역사성 논쟁’이란 책을 함께 읽고 나누기로 했다. 이번처럼 저자 직강이 없는 한 과학 관련 책 하나, 신학 관련 책 하나, 이런 패턴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발제를 담당해 주시기로 하신 이지형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어제 늦은 밤까지 열정을 보여주신 모든 참석자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우리 모임이 하나의 작은 불쏘시개가 되어 바른 성경해석으로 가는 진화에 일조를 할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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