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터미널과 같습니다
교회는 터미널과 같습니다
  • 권영진
  • 승인 2017.11.2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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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 목사의 정언향 칼럼
정언향교회
정언향교회

 

예전에 한 연예인이 예능프로그램에서 자기를 떠나서 살 수 있겠냐는 상대방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보고 싶겠죠. 그립기도 하겠죠, 하지만 살 수 있겠죠."

요즘 목회를 하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작은 시골교회 목회를 하다 보니 성도들 한 명 한 명이 제게는 정말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데, 만일 이 사람들이 다른 교회로 간다면? 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쿨 하게 보낼 수 있을까요? 어쩔 수 없는 경우(이민 등등)라면 할 수 없겠지만 단지 교회가 맘에 들지 않거나 심지어는 목회자가 마음에 안 든다는(오 주여...) 이유로 떠나는 이에게 "행복하세요" 하고 축복해 줄 수 있을까요? 막상 그런 일이 닥친다면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말씀드렸던 그 연예인의 말이 어쩌면 목회자가 떠나고자 하는 성도를 향한 마음가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마음에서 아쉽고 서운하고 애틋함이 없다면 그건 그 성도에게 그동안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말과도 같을 것입니다. 함께 한 시간만큼 쌓여 있는 관계와 정과 추억들이 있는데 어떻게 미련 없이 잘 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한 가족과도 같은 공동체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나 강조되다보면, 즉 인간적 이해관계와 감정들만 교회에 존재하게 되면 교회는 오히려 교회의 생명력을 잃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단순한 지역교회(Local Church)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교회는 그보다 더 큰 상위개념인 주님의 몸 된 교회(Catholic[여기서는 Univesral '보편'의 의미] Church))라는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소위 신학적으로 말하는 가시적 교회(보이는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보이지 않는 교회)의 의미입니다. 보이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지체로써의 역할을 하는 더 큰 개념의 교회의 예표와도 같은 곳이며 분신과도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좁게 보면 내 성도, 우리 교회 교인이라는 말이 맞지만 넓게 보면 모든 교회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고 구성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수평이동(신앙 철새)이라는 말로 단순하게 폄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와 때에 따라 필요한 사람들을 필요한 곳에 보내 일하게 하시는 것이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은 소위 [상도덕]운운하며 교회를 옮기는 성도들을 비난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교회를 옮길 때마다 죄인이 되고 말지요.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정당한 비판이며 교회를 옮기는 성도들은 그런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들일까요?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전제가 필요합니다. 악의적으로 특정한 교회를 비방해서 고의적으로 남의 교회의 성도를 빼가거나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멀쩡한 교회를 분열시키고 차지하려고 하는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나 그 외의 탐욕스러운 목사들과 교회들의 문제는 논외로 합니다. 또한 그저 자신이 대접받기만을 원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고 툭하면 교회를 뛰쳐나가는 사람들도 제외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불의한 자들이고 악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이단들과 불의한 자들을 제외하고 나면, 지역교회가 성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변화가 있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1세기를 지칭하는 초기교회 시대에는 사실 지역교회라는 개념 자체가 약했습니다. 성도들은 늘 모여 함께 예배하고 또 곧 흩어져 자신들의 사역을 감당했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사역들을 감당했습니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고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의 붕괴로 막을 내린 제정 로마시대를 지나며 가톨릭이 조직되고 교회가 교권화 되면서 점점 성도는 교회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과거 중세시대 영주의 주민들이 함부로 지역을 옮길 수 없듯이 성도 역시 교회 지도자들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흐르면서 종국에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종교개혁 후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성도 머리 숫자에 따라 교회 가격을 산정하는 이유는 그 성도들이 교회 자산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깊이 박혀 있다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내는 헌금이 곧 교회의 수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성도라고 다 같은 가격이 매겨지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헌금을 내는 소위 VIP교인들은 헌금을 별로 내지 못하는 성도들 수 십 명과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닙니다. 이러니 이런 성도들이 떠날 때 대부분의 교회들은 펄쩍 뛰며 온갖 협박(?)과 회유로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는 모든 교회들이 교파와 신학을 떠나 암묵적으로 동의해 줍니다.

자신이 공들여 키우고 애를 써서 훈련시킨 성도가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을 때 속이 쓰리지 않을 목회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는 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직 그런 경험은 없지만 아마 저도 언젠가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 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오는 성도들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내지는 않는 웅덩이 늪과 같은 곳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생명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터미널과 같은 곳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유롭게 교회와 교회는 연결되어야 하고 상호 협력해야 하며, 교회는 늘 성도(제자)를 파송하기도 하고 파송받기도 해야 합니다. 물론 세부적인 면에서는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있습니다만 원칙적인 면에서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 모두의 인식의 변환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대승적 차원에서의 교회의 연합이란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식탁에 함께 모이는 하나의 신앙고백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를 떠나는 성도들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악담을 하는 목회자도 사라질 것이고 심지어는 교회를 이미 떠나 다른 교회에서 자리 잡고 있는 성도를 음해하는 사람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성도들이 무슨 죄가 있어 단순히 섬기는 교회를 바꾸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할까요? 이제 그만 교회 지도자들과 지역교회들이 성도를 자신의 재산이나 소유로 생각하는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 더 큰 하나님의 나라의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서로 협력하고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이단들과 교류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이렇게 마음을 같이 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각 교회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선교사를 파송하듯이 성도들 역시 그렇게 파송되고 파송 받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단순히 총회장들이 모여서 교단을 M&A하고 성명서나 발표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근본적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교회들이여, 이제 그만 성도들을 올무에서 해방시켜 성령님께 이 문제를 맡겨 드리면 어떨까요?

저도 언젠가 혹시라도 저희 교회 성도 가운데 "목사님 성령님께서 **교회를 도와 사역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 교회보다 그 교회에 제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때 인간적 관계에서는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은 있겠지만 그 지체를 안아주고 축복해주며 환송하며 파송해 줄 수 있는 목회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그렇게 찾아온 성도를 환대해 주는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집과 탐욕으로 뭉친 지역교회들이 변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름답게 연합하며 사역하는 교회를 꿈꾸어 봅니다. 모든 교회들이 "성도님, 보고 싶겠지요. 그립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성도님을 기쁨으로 환송하며 파송합니다" 하는 아름다운 이별이 있었으면 좋겠고 또 그렇게 새로운 지체를 맞이하는 만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권영진 목사는, 정언향(正言香: 바른 말씀의 향기) 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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