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세계를 향유하는 놀이”
“읽기, 세계를 향유하는 놀이”
  • 이진호
  • 승인 2017.11.23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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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가 된 독자'와 '이동진독서법'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행성B, 2017
이동진, 이동진 독서법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예담, 2017

 

지나가는 간판을 읽거나, 대화의 맥을 읽거나 혹은 분위기를 읽는 등 우리는 매 시간 읽기를 행하며 삶을 영위한다. 인간에게 읽기란 존재 그 자체에 내재된 기능으로 작용하는 그 무엇이다. 읽기, 그 안에 무수히 포함된 수많은 단어와 내용들은 서로간의 작용을 통해 읽는다는 것을 시행하고, 끊임없는 경험과 사유, 이야기를 통해 정제되고 이해되며 새로운 의식과 삶으로 변혁된다. 그러기에 읽기는 인간을 알아가고, 세계를 알아가며 그것들의 연관성과 관계를 추측하고 범주화하는, 삶으로써 여정의 첫 걸음이자 길을 찾는 순례자의 모습을 띄고 있다.

이러한 읽기의 힘과 역할을 직감한 역사의 선조들은 책 읽는 사람들을 여행자, 상아탑, 책벌레 등등의 은유로 표현했다. 읽기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변혁의 힘과 동시에 읽기를 통해 향유하는 존재, 독서가 독자에게 나타내고 작용되는 현상들 등등이 공통의 분모와 특성으로 나타나 읽기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유사한 관념으로 나타난 것이다.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행성B, 2017년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행성B, 2017년

<은유가 된 독자>를 쓴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 69)은 여행자란 은유의 큰 가치를 두고 읽기를 설명한다. 그는 여행을 통해 사유하고 경험하며, 자연을 향유하는 여행자와 책을 읽으면서 사유하고 경험하며 이야기를 누리는 독자와 유사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읽기는 삶을 지시하고, 삶을 통해서만이 독서의 여정을 가능케 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또한 상아탑과 책벌레란 은유를 통해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동시에 세상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 자기만의 공간 속에서 읽기의 향락을 누려가는 여정, 책을 통해 삶이 변혁되고 전파하는 책 바보의 삶을 말한다.

독서 아니 읽기가 중요한 것은 동서고금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 읽기라는 행위는 신경 쓰지 않으면 금세 상하는 김밥과 같이 변질되기 쉽다. 우리나라의 읽기는 경쟁과 생존이라는 문법으로 인해 천천히 과정을 즐기고, 사유와 경험을 맛보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겨루고, 대화하는 깊이보단 많이 혹은 빨리 읽어서 체화시키지 못하거나, 세상과는 동떨어져 지적 향락의 문화나 그 이미지만을 챙기려는 경향이 즐비하다. 특히 정보화 시대, 지구촌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사회 속에서 읽기라는 행위는 더더욱 변질되기 쉬운 위험에 처해있다.

이는 수없이 범람하는 정보의 늪과 파편화 된 지식과 관계의 연결망 속에서 빠른 결과제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망구엘은 은유로 읽기와 독자를 설명하면서 허겁지겁 가는 여행자의 위험성, 책만 먹어치우는 걸신들인 책벌레, 자기만을 탑으로 세상과 단절하는 것을 지적하고, 읽기 그 자체의 과정을 최대한 누릴 것을 명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방송 프로그램 빨간책방으로 유명한 이동진도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다. 그의 저서 <이동진 독서법>에서 그는 책을 그 목적 즉, 기존에 지니고 있는 어떤 목적에 따라 읽을 것이 아니라 재미를 느끼는 읽기가 우선되어야 할 것을 말한다. 내가 읽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읽어나가는, 사유하고, 질문하며 느끼고 체감하며 웃고 우는 그 과정에 충실해야 할 것을 지적한다. 그는 읽기가 주는 부산물이 읽기보다 주요한 것으로 상정되어 있어 읽는다는 것의 과정에서 오는 향유를 누리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이동진, 이동진 독서법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예담, 2017년
이동진, 이동진 독서법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예담, 2017년

읽기는 어떤 목적보다 그 과정이 주는 무한한 향유를 즐기며 진행해야 무수한 부산물도 동시에 누릴 사 있다고 이동진은 말한다. 생각해보면 과정을 최대한 누렸을 때, 거기서 오는 무수한 열매들을 활용하여 제시할 수 있다. 행간과 맥락을 유추하고 파악하여 각기의 유사성을 통한 범주화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이로 인한 세계를 걷는 여정의 얼개가 만들어지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도(正道)가 제일 빠르고 효과적인 길인 것을 느껴도, 현대의 많은 독자들은 가시적인 결과를 위해 본연의 읽기를 등한시하여 변질된 읽기를 자행한다.

그렇기에 읽기를 순간마다 구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읽기 그 자체를 구출하여 만나는 행동. 그것은 명상이나 기도가 될 수 있는 내면의 성찰과 들음의 시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권위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가톨릭 신학자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Antonin-Gilbert Sertillanges)는 진정한 읽기 혹은 공부를 위해서 기도를 통한 열망과 성찰이 필요하며, 이러한 자세만이 진정한 읽기를 위한 전제임을 선언한다.

여하튼 우리는 읽기라는 작업에 있어 때 묻은 것들을 닦아낼 필요가 있다. 읽기라는 행위를 누구와 비교하거나 생존과 경쟁이라는 문법에서 떠나 내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사유하고 향유하며 삶을 살아가며 사랑하는 행위. 그 무엇을 위한 읽기가 아니라 읽기를 통한 무엇인지 모를 놀라운 세계를 만나는 그 행위. 삶의 여정을 더욱 향유하게 만드는 읽기의 갱신이, 놀이의 읽기가 필요하다.

 

글쓴이 이진호는, 일상과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일상 가운데 교회가 되고 싶고 교회로 살고 싶은 강한 열망으로 살아가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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