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웅의책과일상] 어른이 된다는 것? 먼저 어른이 되자.
[김영웅의책과일상] 어른이 된다는 것? 먼저 어른이 되자.
  • 김영웅
  • 승인 2019.01.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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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게, '미움 받을 용기 2, 인플루엔셜, 2016년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게, '미움 받을 용기 2,  인플루엔셜, 2016년

이 책의 전작, '미움 받을 용기'에서 청년은 철학자를 통해 아들러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깨달음을 얻은 뒤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과거의 덫에 얽매이지 않고 미움 받을 용기와 행복해질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지금, 여기'를 살아내기 위한 새로운 결단도 내렸다. 그것의 일환으로 청년은 자신의 열등감이 얽혀있던 직업을 그만두고, 아직 인생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들에게 아들러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학교 선생이 되었다. 그러나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했던 탓일까? 의욕이 넘쳤던 청년은 아이들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아들러의 가르침이 엉터리이고 속임수이며, 심지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위험한 사상이라고 단정짓게 된다. 아들러의 사상은 이해 가능하고 가치관 개혁에 도움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현실 사회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된다. 아들러의 가르침에 무릎을 꿇고 그것의 전도사가 되기로 작정하고 실제 행동으로도 옮겼건만, 청년이 끝내 마주하게 된 것은 아들러를 버려야만 한다는 결론이었다.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청년은 다시 철학자를 찾아왔다. 이것이 예정에도 없었던 이 책 '미움 받을 용기 2'가 쓰여진 이유와 배경이다.

철학자와 청년은 3년 전에 함께 했던 행복했던 일을 모두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회는 뜻밖의 감정으로 시작되었다. 철학자는 청년의 분노가 섞인 아들러 사상에 대한 불만과 불평, 그리고 현장 경험이 가득 담긴 청년의 이유 있는 반론으로 재회를 시작해야만 했다. 철학자는 청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아들러의 가르침이 실천 능력이 전무한 이론에 불과한 사상이 아니라, 청년이 아들러를 오해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어서 뜬금없이 '사랑'을 알아야 하며 실제 삶에서 '사랑을 해야만' 아들러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선택'이며, 청년은 그 선택을 할 만큼의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다고 분석한다. 청년은 어이가 없었지만 따지고 싶었고 답을 알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긴 밤이 시작되었다.

아들러의 가르침에 따르면 칭찬과 야단은 수직관계의 인간관계를 형성할 뿐 아니라 상대방을 구속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일시적인 효과는 낼 수 있을지언정, 길게 보았을 땐 오히려 교육 방법으로는 부적절하다. 아들러 사상의 핵심은 수평적 인간관계와 공동체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의 실무 경험을 가졌던 청년은 칭찬과 야단이 교육 현장에서 필수였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론과 실제가 다름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울분을 토하며, 바보 같은 이론을 실행에 옮기다가 선생으로서 권위까지 잃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교육의 목표는 위에서 아래로의 지식이나 경험 전달이 아니라, '자립'이라고 철학자는 분명히 말한다. 교육이란 '개입'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지원'이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교육의 핵심은 '인간이해'에 달려 있으며, 이를 통해 교육이 자립이라는 목표를 내세울 때, 그 입구는 '존경'에 있다고 역설한다. 청년이 그 동안 알고 있던 존경의 개념과는 달랐다. 청년은 '동경'을 존경으로 알고 있었던 반면, 철학자는 그 동경은 공포이고 종속이며 맹신이라고 반박한다. 철학자의 존경에 대한 정의는 에리히 프롬이 내렸던 것과 같았다. "존경이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이란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 존경은 사랑과 함께 어떤 권력자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이며, 철학자는 말한다. "존경부터 시작하라. 교육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토대는 존경에서 비롯된다"고 말이다. 이는 곧 청년은 그 동안 학생을 가르치고 도와준다는 신념 아래, 선생과 학생 관계를 수직관계로 설정하고 그들을 지배하려고 했을 뿐, 학생과 수평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첫 단추부터가 잘못 꿰매어졌다는 말이었다. 또한, 학생과의 관계에서 존경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리 칭찬과 야단을 금한다고 해도 아무런 효과가 나지 않았던 것이라는 냉철한 분석이었다. 뼈아픈 지적이었다. 그러나 청년은 여전히 아들러 사상은 이론에 불과하며, 현실과 무관한 이상주의적 사상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이 부분에서 철학자는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문제행동 배후에 작용하는 심리를 5단계로 나누어 생각한다고 알려준다. 1단계 '칭찬 요구'부터, 2단계 '주목 끌기', 3단계 '권력투쟁', 4단계 '복수', 그리고 5단계 '무능의 증명'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한 아들러의 통찰인데,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고 한다. 인간은 먼저 자신이 속한 인간관계에서 (특히 선생과 학생 관계처럼 수직적으로 인식된 인간관계에서) 칭찬을 바라고, 이어서 주목 받기 위해 애를 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권력투쟁을 일으키고 복수에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무능함을 과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청년은 3년간 경험해온 학생들의 행동을 마치 철학자가 꿰뚫고 있는 듯했다. 철학자는 이어서 말했다. 이런 문제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심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백신 역할을 바로 아들러의 '공동체 감각'이 해준다고 말이다. 청년은 의아했다. 이미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여겼던 개념이기 때문이었다.

칭찬 받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모이면 그 공동체에는 경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경쟁이 일어나는 곳은 권모술수와 불의가 따르게 되어 있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경쟁원리에 입각한 인간관계이다. 그러나 상벌도 경쟁도 없는, 경쟁원리가 아닌 협력원리에 입각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이 주장하는 수평관계를 관통하는 것도 바로 이 협력원리인데, 이러한 원리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곧 아들러가 바라는 세상인 것이다. 아들러에 따르면 이런 공동체를 살아내기 위해선 개인 안에 내재된 공동체 감각을 발굴하여 감각으로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개인은 과거의 덫에서 해방되어 '지금, 여기'를 살아낼 수 있는 용기 (미움 받을 용기, 행복해질 용기, 평범해질 용기와 같은 맥락)를 내야만 하고, 자기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귀로 듣고 타인의 마음으로 느끼는, 다시 말해 타인을 공감하는 기술을 통해 타인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존중해주는 것이 존경이며, 자기중심성에서 탈피하는 것이 진정한 자립임을 기억할 때, 사랑은 곧 진정한 자립이라고도 역설한다. 그리고 이것이 곧 인간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을 마무리 짓는다.

동쪽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을 무렵, 청년은 자신의 3년을 돌아보며 첫 단추부터 잘못 꿰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교육자로서의 역할은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관계'였다. 신뢰와 존경, 배려, 사랑의 원리로 작용하는 수평적 인간관계였던 것이다. 아들러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 청년이 아직 인생 최대의 선택을 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열등감에서 해방된 것 같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을 구원함으로써 자신을 구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일종의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져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해야만 했다. 교육의 목표가 자립임을 직시할 때, 선생인 자신이 먼저 자립이 되어 있지 않았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모든 것은 용기로 환원되었다. 그러나 철학자를 다시 만나고 청년은 다시금 용기를 내었다.

거룩함과 구별됨을 운운하기 이전에

먼저 어른이 되자.

책을 읽으면서도 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나라의 모습과 아들러가 바라는 세상에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자와 약자가 나뉘지 않는, 차별이 없는 세상. 따지고 보면 배제와 혐오도 수직적 인간관계에서만 기인되는 것일 테다. 아들러가 강조하는 공동체 감각은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살아내야 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가 되리라 생각한다. 성경이 인간에게 주어졌고, 모든 말씀과 율법이 인간을 위해 주어졌음을 생각할 때, '개인 심리학'을 주창하여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며 일생을 보낸 아들러의 가르침은 단지 심리학에 머물지 않고 철학이자 사상, 그리고 인간의 삶의 태도에 대한 훌륭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불의가 횡행한 이 시대는 이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어른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배제와 혐오를 일삼으며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 천착해 있을까? 아들러라는 한 사람의 연구도 뛰어넘지 못하는, 사적인 복음에 갇힌 기독교는 과연 무슨 힘이 있는 걸까? 그런 기독교의 방향이 과연 하나님나라로 직결될 수 있을까? 많은 질문들이 떠오르지만, 우선 이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작은 결론을 하나 내려보면 어떨까. "거룩함과 구별됨을 운운하기 이전에 먼저 어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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