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환] 온 세상의 왕으로 오신 예수
[이택환] 온 세상의 왕으로 오신 예수
  • 이택환
  • 승인 2019.01.07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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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환 목사의 설교 - 마 2:1-12
Guido Reni, 예수의 세례받음(1623)
Guido Reni, 예수의 세례받음(1623)

오늘 16일은 주현절(主顯節, Epiphany) 입니다. 주현절이란 하나님이 당신을 세상에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하나님은 원래 초자연적인 분이신지라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물리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주신 그분의 계시(성경)를 통해, 그리고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그분의 성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당신을 세상에 공식적으로 드러내신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사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현절이란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지요.

주현절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 가운데 특별히 다음 세 가지를 중요시합니다. 첫째는 아기 예수님에 대한 동방박사들의 경배’, 둘째는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사건, 그리고 셋째, 예수님이 처음으로 기적을 베푸신 가나 혼인잔치입니다. 모두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당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사건입니다. 한 번은 아기 때, 또 한 번은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실 때, 그리고 세 번째는 공생애 이후 첫 이적을 베푸실 때입니다. 그래서 주현절과 관련된 교회력 말씀도 주로 이 세 가지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주현절은 교회 초기부터 부활절, 성령강림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3대 절기 중 하나였습니다. 역사적으로는 크리스마스가 주현절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하지요. 초기교회 성도들에게는 성탄절보다 주현절이 더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일부 동방정교(아르메니안)에서는 아예 16일 주현절을 성탄절로 지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현절이 매우 생소합니다. 한국 교회가 아직도 교회력보다 세상의 달력을 더 중요시 여기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많은 교회가 주현절은 지키지 않아도, 송구영신예배는 소중하게 지키지요. 사실 송구영신예배는 교회력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만의 특별한 전통이지요.

오늘 주현절 복음서의 말씀인 동방박사 이야기는 예수께서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의 모든 사람들을 향한 구원의 빛이심을 보여줍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방인이었지만, 마태복음이 말하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오히려 유대인들보다 먼저 찾아가 경배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제 단지 이스라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장소, 모든 사람들에게, 심지어 이스라엘보다 이스라엘 밖에 더욱 활짝 열리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기독교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지요. 그런데 동방박사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의 말씀 이사야 60장과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60장에서 선지자(3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약 4-500년 전 쯤에, 장차 메시야의 때가 되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그 때 그 영광의 찬란한 빛이 시온에 비치게 되고, 세상 모든 나라의 수많은 왕과 무리들이 시온으로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먼 곳에서 올 때에 빈손으로 오지 않고, 황금과 유향과 온갖 진귀한 보물을 가지고 나아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60 : 1-7, 부분발췌"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혹시 이사야 601-7절을 축약한 것이 오늘 마태복음 2장 동방박사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에서 메시야의 별이 빛을 발하자, 동방박사들이 그 별을 보고 새로 탄생한 이스라엘의 메시야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옵니다. 또 그들은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올 때, 소중한 황금과 유향 그리고 몰약을 예물로 가지고 오지요. 동방박사들은 흔히 점성가로 알려져 있지만, ‘현자’, 또는 왕들로도 소개됩니다. 그렇게 볼 때, 동방박사들은 장차 이스라엘의 대표이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올 세상 모든 나라의 수많은 왕들과 그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이후의 기독교 역사가 실제로 그렇게 흘러갔지요.

성경을 입체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구약성경에 정통한 유대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이런 해석을 못합니다. 이사야 60장을 읽으며, 단지 유대인이 온 세상을 다스릴 날을 기대할 뿐이지요. 언젠가 예루살렘이 세상의 중심이 되면, 그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 것이며, 그와 함께 세상의 부도 예루살렘에 집중된다는 것, 당시로 말하면 예루살렘의 로마 화, 오늘날로 말하면 예루살렘의 뉴욕 화입니다. 이슬람식으로는 예루살렘의 메카 화겠지요. 그러나 이사야 60장이 말하는 것은 장차 예루살렘이 로마가 되고 뉴욕이 되고 메카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이 온 세상의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Jacob Jordaens(1593~1678)

우리는 오늘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 이야기 역시 입체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가령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메시아의 탄생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구원 소식이 먼저 알려진 곳이 뜻밖에도 교회 밖이었습니다. 교회가 교회 밖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동안 교회에 속해 있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난 소위 가나안 성도들이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지 교회가 아닌데, 자칫 교회가 하나님 행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한편 오늘 말씀에서 당시 성경에 정통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그 귀한 성경지식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헤롯을 위해 사용한 것을 봅니다. 그들에게 성경은 목숨보다 소중한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단지 먹고 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할 뿐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만나 경배한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헤롯을 속입니다. 성경에 정통한 자가 진리를 버리고 성경에 무지한 자가 진리를 따르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반드시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일수록 내가 과연 누구를 위해 성경을 공부하는가? 늘 물어야 합니다.

오늘 동방박사 이야기는 단순히 교훈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반지의 제왕을 뛰어 넘는 재미있는 판타지 문학도 아닙니다. 특히나 천체물리학과 관련된 리포트는 더욱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타난 별이 헬리 혜성이라느니, 혹은 왕의 별 목성과 구원자의 별 토성이 물고기(익투스)자리에서 랑데부한 것이라느니, 어떤 별들은 가다가 멈추기도하고 다시 가기도 한다느니 주장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보다 우리는 동방박사 이야기를, 감추어졌던 구원의 비밀이 마침내 드러나는 이야기, 유대인들이 미처 보지 못한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취,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구원 사건, 그 하나님의 놀라운 주현절 현현이야기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동방박사는 단지 전설 속의 인물들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의 대표자가 됩니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동방박사들의 이름이 후대에 붙여졌는데, 황금을 바친 인물이 유럽계(백인) 노인 멜키오르, 유향을 바친 인물은 아시아계(황인) 청년 카스파르, 몰약을 바친 인물은 아프리카계(흑인) 중년 발타자르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는 우리가 단순한 제 3자가 아니라, 그렇게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 사건에 참여할 것을 요구받는 것이지요. 과거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우리가, 우리의 대표인 동방박사들과 함께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께 나아가 경배하고 소중한 예물을 드린, 진정한 새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오늘 서신서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 (3:9-12)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세상을 좀 더 멋지게 살아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일은 세상이 전문입니다. 서점에만 가 보아도 멋지게 말하고, 멋지게 생각하고, 멋지게 자신을 드러내는 처세술 관련된 서적들이 즐비합니다. 인터넷 곳곳에 멋진 육체와 정신을 만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지요. 하지만 사도바울이 목숨 걸고 전한 복음은 그런데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그는 에베소서 31절에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로 인해 이방인을 위해 갇힌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매 맞고 감옥에 갇히면서까지 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에 관한 계시였습니다.

이제 그 비밀에 관한 계시가 공개됨으로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의 당장의 현실적인 조건 - 잘 먹고 잘 살기, 또는 현실문제의 해결 - 이전에 인간의 근원적인 구원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단지 인간의 현실적이 조건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뜬 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일”,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에 관한 계시를 이해하는 자들에게 성경말씀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경탄의 복음이 됩니다.

성경이 이렇게 일면 쉽고도 어렵고, 어렵고도 쉬운 말씀이지만, 동방박사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현현사건의 의미는 단순합니다.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 온 세상의 참된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앞에서 오히려 막강한 세상 권력을 가진 자들이 두려워 벌벌 떨고 소란을 피웁니다. 그 앞에서는 온 세상의 현자들도 무릎을 꿇고 경배합니다. 그 앞에서는 세상의 온갖 차별주의도 힘을 잃어버리고 설 지리가 없습니다. 그 앞에서는 세상의 실질적인 왕 노릇을 하는 금은보화와 부와 재력, 자본도 빛을 잃습니다. 이 놀라운 비밀의 계시, 하나님의 현현의 의미를 세상 가운데 살아 내고, 또 세상 속에 전파할 책임이 바로 교회에 있습니다.

2019년 첫 번째 주일인 주현절, 오늘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크고도 편만한 은총이 올 한 해 동안 우리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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