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와 회개를 선포하심, 제자를 부르심
하나님나라와 회개를 선포하심, 제자를 부르심
  • 하창완
  • 승인 2019.01.07 0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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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완 목사의 큐티목소리나눔 - 막 1:14~20

1. 세례요한이 잡힘

분봉왕 헤롯이 제수씨를 빼앗아 아내로 삼은 것을 책망하다 옥에 갇힌 후 목 베임 당해 죽은 세례요한.(막6:14~).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명을 감당하다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모습으로서는 참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이 땅에 보내신 사명을 살아가는 것(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역시 뭔가 화려함 삶이나 멋진 은퇴식으로 반드시 이어질 거라고 기대할 수 없겠구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모습으로 은퇴하든, 삶의 여정 가운데 주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있다면 그만큼 행복하고 평화로운 이 땅의 삶으로 기억 남겠죠?

 

2. 예수님이 가길리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시작하심

예수님은 그의 활동이 멈추는 시점을 공생애 시작 시점으로 삼습니다. 활동무대를 갈릴리로 정하셨구요. 갈릴지 지역에 대해 마태는 사9:1,2를 통해 이방의 땅, 어둠의 땅, 아픔이 가득한 곳이라고 소개합니다. 구약시대 전체를 통해 메소포타미아지방으로부터의 침입을 받을 때 가장 먼저 공격받고 가장 심하게 약탈당해왔던 곳이었거든요. 예수님이 오신 시점에도 여전히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와 정치 권력자들의 소작이마 부쳐 먹고 사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동네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나라가 왔다”고 선포하신 것은 말로 끝난 게 아니라. 이 지역 가난한 이들을 먹여 주셨고, 병자를 고쳐주셨으며, 눈먼 이들의 눈을 뜨게 해주신 것,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케 한 것들을 다 포함한, 실제적인 회복이었습니다(눅4:18). 나 역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면서 누리게 된 회복과 빛의 삶이 얼마나 풍성한지 돌아보면 그저 감사요, 감격일 따름입니다.

내가 전파하는 복음, 하나님나라 이야기도 예수님처럼 이웃과 친구의 삶 속에 실제적인 위로와 회복과 해방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들에게 하신 것처럼, 내가 할 일은 옆 사람과 같이 울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고통에 동참하는 것임을 마음에 다짐합니다.

 

3. 회개하라. 하나님나라가 왔다.

우리를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그 은혜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몫은 “회개”입니다. 그동안 내가 주인 노릇했고,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주인 삼고 살았던 것에서 돌이켜, 하나님이 바로 내 주인이며, 나아가 세상 우주 만물의 주인이요 통치자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주도하시고, 하나님이 공급하시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끌어 가시는 원칙과 방식을 내 삶의 원칙과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연습하고 살아가는 게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이것은 어떤 시기에 일어나는 혁명적인 변화와 더불어 인생 전체를 통해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삶의 변화와 성장과정입니다.

현재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 가운데 가장 잘못 알고 있고, 왜곡된 부분이 바로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는 길에 대한 “은혜와 믿음”, 그리고 “회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많은 이들이 그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우리가 죽을 때 지옥가지 않고 천국 살 수 있도록 천국행 기차표를 받는 정도로 회개와 구원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나라는 내가 지금 여기서, “경제가, 정치권력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시다”라고 고백하고 그 길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거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삶이 없이 그저 입으로만 믿노라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은,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마7:21) 입니다.

 

4. 부르심과 버려두고 따라감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신 다음 곧바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나라를 살아갈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고기잡이 하던 사람들을 부르심 : 당시 갈릴리에서 배를 가지고 어업을 하던 자영업자들은 소작농이 대부분이었던 갈릴리 지역에서는 꽤나 부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버려두고 따라감 : 이들이 삶의 터전(배, 그물, 잡은 고기, 가족들...)을 다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게 깊이 다가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요게 제일 먼저 다가오네요. 오늘날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이들처럼 모든 것을 버려둬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해외 선교사의 경우?).

하지만, 오히려 살아가며 묵상하는 가운데 나의 더욱 내밀한 부분에서 버려두고(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살아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잡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하나씩 버리는 작업을 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보는 제자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과 대비되는 우리의 영역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매일 내 삶의 우선순위를 예수님께 맞추고 조율하는 삶을 살아가는 게 ‘버려둠’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이라는 깨달음을 갖습니다.

[하창완] [오전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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