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건용] 다 털고 감사로 마무리합시다
[곽건용] 다 털고 감사로 마무리합시다
  • 곽건용
  • 승인 2019.01.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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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 목사의 설교 - 골로새서 2:6-7, 3:12-15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얽혀 있는 우리의 시간

언제부터 우리 사람은 시간을 계산하며 살았는지가 궁금합니다. 인류가 벌거벗고 돌도끼 들고 사냥 다녔을 때는 시간을 어떻게 계산했을까요? 배가 고파지는 때를 기준으로 삼았을까요? 지금은 시간을 한 시니 세 시니 열두 시니 하는 식으로 숫자로 세지만 과거에는 인시(寅時)니 자시(子時)니 하는 식으로 문자로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둘 다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계산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흔히 우리는 시간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눕니다. 내일이 지나면 2018년은 과거가 되고 2019년의 시간이 현재가 되는 식으로 말입니다. 오래 전에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가 시간에 관해서 쓴 흥미로운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시간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해서 사고하고 서술하지만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시제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방금 끝낸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구분하지 않고 지금 하는 일과 곧 하려는 일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과거는 이미 끝나버린 게 아니라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현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겠습니다. 이들의 시간 개념에 따르면 사람들은 가까운 과거와 현재와 가까운 미래가 어우러져 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셈입니다. 제게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사고방식으로 보입니다.

오늘이 1230일이니 이틀 후면 2019년 새해입니다. 오늘 우리는 송년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이유 없이 허전해 하고 의기소침해지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나는 한 해 동안 뭘 했나 싶고, 나는 이렇게 공허한데 남들은 안 그런 것 같고, 세상은 내가 허전해하고 공허해하는 것과 무관하게 잘만 돌아가는 것 같아서 더 허전해지고 우울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연말에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안타까운 통계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있는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봐주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만으로도 근거 없는 상실감과 허전함을 없앨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지금 긍정의 힘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긍정적인 일들이 찾아올 거라느니, 원하는 것에 집중하면 그게 뭐든 가질 수 있다느니, 세상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존재하고 당신의 욕망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니 당신은 그걸 극대화시키는 방법만 배우면 된다느니, 원하는 것을 눈앞에 그려보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끌려올 것이라느니.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자신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는 말은 장밋빛 꿈을 갖고 끝없이 욕망을 자극해서 더 소유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흔들리며 피는 꽃

우리는 사람인 이상 때로 흔들리기도 합니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오롯이 서 있어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가슴에 품어온 소망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으로 하루를 살다가도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라도 건성으로 지나치고 싶을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정직하고 곧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양심에 걸리게 행동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포근한 햇살이 비치는 날에도 마음에선 심한 빗줄기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따스한 사람들 틈에서 숨 쉬는 순간에도 문득 심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행복만이 가득할 것 같은 특별한 날일지라도 홀로 소리 없이 울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재미난 영화를 보며 소리 내고 웃다가도 웃음 끝에 스며드는 허탈감에 우울해질 때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숨 쉬기도 어려울 만큼 할 일이 쌓여 있는 날에도 머리로만 생각할 뿐이고 멍청히 보고만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이 늘 한결 같기를 바라지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변화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한 가지 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흔들린다고 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분도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이 늘 고요하다면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거짓이 숨어있기 십상입니다. 흔들림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한 모습임을 하느님은 아십니다. 적당히 분주한 소리를 내며 사는 게 사람다운 삶의 모습임을 하느님은 아십니다. 그러니 가끔은 흔들려도 보고 모든 것들을 놓아버릴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 과정 뒤에 오는 소중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다시 희망을 품는 시간입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송년주일에 여러분과 같이 읽는 시가 있습니다. 정용철 시인의 마음이 쉬는 의자(2002)에 실려있는 시로 보입니다.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 좋은생각, 2002년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 좋은생각, 2002년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 한다고 애태우지 마십시오.
마음을 다해 사랑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슬픔에 젖어 있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 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흘린 눈물 거기까지가
|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비우면서 괴로워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빨리 달리지 못 한다고 내 발걸음을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내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해 걷는 거기까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의 모든 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 한다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피어난 거기까지
꽃과 잎의 한계이고 그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입니다.
충분히 아름다웠고 넉넉하게 향기로웠던 2018

여러분의 2018년은 어땠습니까? 먼 훗날 2018년은 여러분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까요?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며 몇 년 전 송년주일에 읽었던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사람들은 차디차게 식어버린 하얀 연탄재를 보지만 시인은 하얗게 식어버린 재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불꽃을 봤습니다. 올 한 해 마지막 날은 그 한 날만이 아니고 한 해의 삶이 농축되어 있는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2018년 한 해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뜨거운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벗이요 신앙의 동지들에게 뜨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발길질 당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연탄재에 발길질 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차갑게 식어버린 사람들까지도 토닥여주고 끌어안아줬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한 해의 삶을 있는 그대로 감사히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토닥여주십시오. 여러분은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합니다. 2018년 한 해의 삶을 자랑스러워할 충분한 이유가 여러분에게는 있습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앞에서 인용한 시처럼 거기까지가 여러분의 한계이고 여러분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사회의 한 곳에 소박하게 피어 있는 꽃으로서 충분히 아름답게, 넉넉하게 향기를 발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읽은 골로새서 말씀으로 2018년 송년주일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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