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교회가 되어가는 신비
[김동환] 교회가 되어가는 신비
  • 김동환
  • 승인 2018.12.0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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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목사의 설교 - 요 17:14-23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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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숨교회와 길섶교회가 함께 드리는 예배

오늘은 새숨교회와 길섶교회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교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 새숨교회 성도님들은 두 달만에 뵙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길섶교회는 태어난지 석달 정도 되었습니다. 아직 아기교회(?)에요. 건강히 잘 자라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새숨교회는 5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번에 왔을 때 알았는데요, 저는 사실 모임이 시작된지 얼마 안된 줄 알았어요. 5년되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교역자 없이, 설교하시는 목사님들을 초청하시고, 함께 기독교신앙을 공부하고 성경을 묵상하며 자발적으로 그렇게 오래 모였다는 건, 그 만큼 이 교회에 애정에 있으시다는 거 잖아요? 모임을 시작한 길섶교회가 배워야할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이제 연말이 되면 저희도 내년을 위한 회의를 할 텐데요, 사실 저희는 그렇게 큰 계획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그냥 모이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모여보고 좋으면 계속 모이는 거고, 아니면 흩어지는 거죠^^; 지난 주에 길섶교회로 새로 등록한 새친구가 이 자리에 있는데, 바로 이런 말하면 시험드는 거 아닐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대충하겠다는 건 아니고, 최선을 다할거에요, 오해는 하지 마시구요, 다만 오랫동안 모이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저 자신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종종합니다. “목사님은 언제까지 목사로 살아가실 건가요?” 라고 누가 물으신다면, ‘저는 그냥 어느 교회든 제가 필요로 할 때까지 목사를 하겠다.’ 라고 대답 할 것 같아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오래 살아가는게 중요하지, 목사를 오래 하는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다만, ‘오늘날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목사가 어떤 목사일까?’ 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새숨교회는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로 자라나기 위해 어떤 계획들이 있으신지요? 저희보다 많은 기도와 고민을 해오셨을 텐데, 그런 이야기도 조금 듣고 싶습니다교회가 어떤 곳인지, 우리는 왜 모이는지. 어떤 일에 교회가 좀 더 힘을 쏟아야하는지!’ 이런 이야기는 한 번씩 꼭 나누어야할 이야기 같아요. 특히 연말, 연초에, 한 해를 돌아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할 때 말이죠. 여러분에게 교회는 어떤 공간인가요? 얼마나 중요한가요?

또 다른 질문을 저에게 던져봅니다. ‘만약 목사를 그만두면, 나는 어떤 교회를 다닐까? 어떤 기준으로 교회를 고를까? 아니, 주일 날 교회는 나갈까?’ 선뜻 , 이 교회 다녀야겠다!’ 고 바로 떠오르는 교회가 몇 개 없어요. 마음이 아픈 현실입니다. 목사로 살아가다보니 교회의 내부사정을 좀 더 알게 되었어요.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나서 동료 목사님들 연락도 많이 받구요, 여러 교회 이야기도 더 들어요. 정말 좋다! 이 교회의 이런 모습 배우고 싶다! 라는 교회 보다는, 마음 아픈 기도제목들을 받는 상황들이 더 많았어요.

앞으로 한국교회의 상황이 좋아지진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절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이든 아니든, 저는 교회가 필요한 것 같아요. 신학적인 이유는 차처하더라도, 제가 그런 모임을 필요로 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복음이 선포되는 공간을 한 번씩 가서, 신앙을 주제로 한 수다모임, 그리고 그 신앙으로 살아가는 일상이야기를 듣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임이 저는 필요하거든요. 그 모임을 위해 봉사하는 성도 중의 한 사람이 목사일 뿐이지요. 저는 그런 모임을 돕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구요, 당분간은 그렇게 살 것 같습니다.

 

2. 세상과 교회 사이에서

새숨교회는 교회 이름의 뜻이 새로운 숨, 새로운 생명인가요? 저회 교회 이름은 길섶인데요, 우리말로 길의 가장자리라는 뜻이랍니다. 투표로 정했어요, 제 머리속에는 선한 이름이 안나오더라구요. 지금도 그 이름을 지어준 청년에게 감사드리는 마음이에요.

길의 가장자리. 이것도 사실 생각하기 나름이죠! 어떤 길의 가장자리인지, 각자가 와닿는데로 해석을 하면 될 텐데요, 길의 가장자리에 소외된 이웃들을 생각하는 교회 일 수도 있구요. 저는 교회와 세상의 가장자리로 느껴져요. 너무 종교적인 형식,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신앙의 본질을 늘 고민하고, 또 세상의 이웃들에게 하나님을 편안하게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보자. 세상 친구들이 편하게 놀러와서 기독교 예배에 참여하고, 신앙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고, 진실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교회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가 시작된지 석달 만에, 지난 주에는 교회다니지 않는 분들이 두분 모임에 참석했답니다. 신학과 과학의 대화를 장신대에서 가르치시는 교수님도 함께 하셨는데요, 과학이란 주제로 모임을 하다보니 친구들을 데려온거에요. 물론 당분간 또 안오실 듯 하지만, 부담없이 열린 모임이어서 좋았다는 피드백도 받았습니다사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이 교회 문턱을 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종교적인 예배형식, 종교적인 언어, 낯선 분위기가 이유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엔 약간은 수용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기독교신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종종 회자되는 엉뚱한 이야기들 말이죠.

연합뉴스 TV (2018.10.03) 갈무리
연합뉴스 TV (2018.10.03) 갈무리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제가 지난 주에 학교에서 2학년 아이들에게 지진에 대한 수업을 했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이니까, 아직 세상에서 살아간지 10년이 안된 분들이에요, 그래서 지구과학의 깊은 이야기는 못 나눠요, 하지만 그래도 살짝은 가르치는데요, 지구 안에 무언가가 서로 부딪혀서 땅이 흔들리는게 지진이다, 이걸 귀여운 영상으로 소개를 해줘요. 무서운 지진이 나면 우리는 어떻게 대피하는게 좋을까? 이런 내용을 가르치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포항에 큰 지진이 났었잖아요. 그리고 저희 옆에 일본에도 지진이 자주 나구요. 근데 교회를 너무 열심히 다니는 어떤 분들은 지진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어느 지역에, 혹은 어느 나라에 하나님의 분노가 임해서 지진이 난 거다, 이런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어떨까요? 예수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다가도 사라질 것 같아요, 제 기억에 작년에도 매스컴에 이런 말들이 오르고 내렸던 기억이 나요. 저는 일단 이런 것. 교회 안에서도 서로 공유할 수 없는 이야기들만 줄여도, 세상 사람들이 교회 문턱을 넘기가 훨씬 수월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역사하셔서 그 분들의 마음 속에 어느날 하나님을 찾도록 속삭이시는데, 교회 안에 이상한 잡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할 때가 있는게 참 마음 아픈 일입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 다녀간 걸 계기로, 우리는 왜 교회로 모일까? 이 질문은 묵상하며 한 주를 보냈어요. 아마 여기 모인 분들 정도면, 일요일에 안모이면 지옥간다, 혹은 하나님의 율법, 안식일을 어긴거라 무언가 하나님께 벌을 받을거야, 이런 생각은 하지 않으시겠지요?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혹은 구약의 율법을 지키느라 주일에 모이는게 아니지요. 실제로 제가 교회일 할 때, 주일에 오는 교회 오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많이 속상했었어요. 자기는 솔직히 지옥가기 싫어서 주일에 교회를 나왔다는데, 그 말을 듣는데 참 주일이 행복하지 않았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왜 그렇게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생각할까요

왜 그렇게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생각할까요? 제가 교사로 일하고 있다보니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학교다닐 때 무서운 선생님을 많이 만나서 그럴까요? 예전에는 체벌이 좀 심하긴 했었잖아요아까 지진을 가르치는 2학년 수업 중에, 한 아이가 질문을 했습니다. 엄청 떠드는 친구였어요, 물론 다 떠들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출난 아이였는데요, 양심에 찔렸는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왜 화를 안내세요?” 질문도 재밌었는데, 주변 아이들 대답이 더 웃겼어요, “선생님이 착해서", "영혼이 순수해서" 등등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수업실력이 부족해서, 약간 반-포기 상태라서 화를 안낸건데요, 담임교사도 아니구, 반마다가서 한시간 수업을 하며 돌아다니는 교사라 약간 풀어줘도 좋겠다 싶어서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해석에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 장난꾸러기 아이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진지하게 대답했는데요, 황당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봤지만, 저는 제가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 대답을 했어요. 모든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존재 한 존재잖아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구요.

초보교사인 저도 이 정도 노력은 하는데 말이죠, 하나님을 너무 감정기복적인 분으로 상상하고, 화나면 지진으로 심판하고, 주일에 교회 빠지면 벌주는 분으로 이해하는 건그렇게 설교한 목사 잘 못일까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성도의 잘못일까요? 둘 다 일 수도 있겠죠.

 

3.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

이런 부정적인 이유말고, 정말 우리가 교회로 모여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대답이 있겠지만,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 본문에 그 이유가 잘 정리 되어 있어요.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들이 많이 있지요? 그 중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잡히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길게 나눈 내용과 제자들을 향한 기도들이 있어요. 오늘 읽은 17장은 그 긴 이야기의 마지막에 예수님 하신 기도 부분이거든요. 제가 1714절에서 23절을 한 번 읽어볼텐데요, 이 속에서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를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멘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 첫번째는 14절에 나와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은 어떤 말인가요? 취업이 안됐다, 그런 말이 아니겠지요? 하나님의 사랑과는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질서, 그것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고, 잘난 사람이 누군가의 위에 서고, 힘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의 자유를 빼앗을 수 있는 세상. 예수님의 사랑은 그런 질서와는 달랐잖아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가장 낮아지시고, 연약하고 낮은 사람이 가장 앞에 설 수 있는 신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기에, 그런 세상 속에서는 늘 다른 느낌’, ‘이질감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같은 질서, 하나님의 사랑을 품은 사람들과의 연합이 자연스럽게 꼭 필요한거죠.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논리, 자기 말을 안듣는다고 지진으로 심판하는 하나님을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세상질서를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거죠. 천국에 갔더니 교회를 잘 다닌 사람은 엄청 큰 집들이 있더라, 이렇게 말하면 또 신앙의 언어들로 세상 질서를 말하는 거에요. 세상 질서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지 못한 거죠.

두번 째 이유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연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21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고 기록되어있는데요, 성부 하나님 안에 성자 예수님이, 성자 예수님 안에 성부 하나님이 계시다는 표현이 참 신기하지요. 이러한 고백들이 바로 교회가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신앙하게된 출발점입니다. 유대교의 유일신과는 다른 삼위일체 신앙이지요.

아마 처음 이 기도를 듣는 제자들도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거에요.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에야,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같는 하나님이라고 믿었으니까요. 이 땅에 성육신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러요. 여기서 조금 머리 아파지지요? 하나님이 두 분이신가? 좀 더 높은 하나님이 계시고, 낮은 하나님이 계신건가? 아주 다양한 상상들이 시작되는데요, 나중에 신약의 전체 고백들을 통해 성령하나님에 대한 이해까지 덧붙여져서 교회는 하나님을 한 하나님이시자, 또 세 분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과학적으로,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분석할 수는 없어요. 다만, 하나님은 한 신성을 가지시면서도, 동시 구분되는 고유한 영역을 가지신 세 분의 하나님이시다는 걸 신약의 전체 역사를 통해 믿는거에요. 조금 낯설지만, 교회는 하나님을 공동체적인 한 분 하나님으로 믿고, 또 이걸 토대로 하나님과 세상과 나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공간입니다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 안의 신비한 연합에 우리를 초청하세요. 우리는 이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에 우리가 참여하는 거에요. 그것을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표현하구요, 다른 말로 구원받았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혼자가 아니게 되어요. 신앙 때문에 우리는 신비한 연합에 참여하게 되는 거구요,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어요. 공동체로 살아가게 되지요. 신앙 때문에 친구가 생겨요. 그게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인거에요. 신앙은 그런 신비한 힘입니다. 모임을 만드는 힘이죠. 전혀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 안에서 연합하게 되는 거에요.

때때로 친해지다보면 갈등이 생길수도 있지요, 다툼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 갈등과 다툼을 넘어서 또 건강한 하나가 되기위해 노력합니다. 개인의 의견을 무시하는 하나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하나,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과 같은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신앙은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사이에 있는 신비한 연합입니다. 그런 신비한 연합을 위한 애씀이 자신 안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모여야합니다. 21절에 선명하게 나와있는데요, 하나님이 공동체적인 한 분이신 것처럼 제자들, 즉 교회가 하나될 때 세상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 때문에 모인 사람들, 그 눈에 보이는 공동체를 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게 되는 거에요.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목자로 모시고 연합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사람들은 우리의 모임을 통하여 ,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시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거죠.

건강한 교회로 모이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하구요. 또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 기회가 더 줄어들겠지요. 물론 하나님께서 교회만을 통해 일하시는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교회는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가장 뚜렷한 공간이기에, 우리에게 책임감이 있는거에요.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교회가 되어가는 신비라고 지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저희가 모이는 것도 신비이지요. 저도 나름 제 주장이 센 편인데, 어느새 신앙을 가지고, 또 목사가 되어 여러분을 만났구요, 아마 여러분 한 분 한 분도 나름의 생각, 고집이 있으실텐데, 하나님의 사랑에 설득되어 이 자리에 모이신거 잖아요?

새숨교회, 길섶교회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리라는 소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이구요, 따라서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세상의 질서에 저항하고, 하나님 안에서 신비한 연합을 누리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애쓰는 교회. 크고 작은 교회들이 서로 중보하고, 연합해서 서로가 그런 교회들이 되어가도록 도왔으면 좋겠어요.

각 교회마다 부족한 부분들도 있을 텐데요, 하나님께서 만져주시고 이끌어주시리라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더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되어가는 거지요. 하나님의 신비 안에서 말입니다. 하나님 무서워서, 벌 안받으려고 나오는 교회가 아니라, 그 신비 안에서, 우리가 좋아서, 신나서 모이는 교회, 거룩한 교회가 되어갑시다.

글쓴이 김동환 목사는, 길섶교회를 섬기며, 평일에는 초등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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