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자랑에 담긴 역설과 심오한 복음의 진리
바울의 자랑에 담긴 역설과 심오한 복음의 진리
  • 하창완
  • 승인 2018.12.07 2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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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완 목사의 큐티목소리나눔 - 고후11:16-33

 

1. 여전히 비장미 가득한 비꼬는 어투로 말하는 바울.

어제 함께 묵상하며 나눴던 배경적 지식을 갖고서 오늘 본문을 바라보면 바울의 이 어투, 숨소리, 눈빛 등등 많은 걸 느끼며 본문 속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휩쓸려 들어간 그 가짜 교사, 사탄의 도구가 된 사람들이 대놓고 사람들을 홀렸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서 자기를 소개하기로 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로 한 거죠. “너희들이 ... 하다고 자기를 자랑하느냐? 나는 더더욱 ... 하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고린도는 아가야지방의 대표적 로마도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로마문화가 엄청 밀려들어왔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 ‘로마화’에 얼마나 공을 세웠는지를 명함에 가득 새기고 다닙니다. “나는 누구누구 집정관 때 무슨 벼슬을 했고, 극장을 지을 때 자금을 댔고, 00속주의 총독을 지냈고...” 고린도교회에 찾아온 유대파송 교사들도 이 문화에 걸맞게 자신을 소개한 거죠. 또 그게 고린도 문화에 딱 맞았고, 사람들의 자부심을 한껏 높여 주었구요.

이제 바울도 그 대열에 잠깐 끼어들기로 합니다. “너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다. 너희가 아브라함 자손이냐? 나도 그러하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에 이르러서는 “나는 더더욱 그러하다”로 나아가면서, 진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그가 겪었던 수많은 사건들이 쭉 나열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진짜 사도의 엄청난 내공을 느끼고 압도당하고, 비장미 가득한 진실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바울은 분명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은 평소 복음을 소개하는 방식이 아닌, 저 나쁜 놈들이 사용하는 방식을 잠깐 빌려서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조차도 바울의 진정성과 복음의 위대함과 능력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이 역설적 아름다움, 진실!!!

 

2. 바울의 자랑, 그 역설, 그 비장함, 복음에 대한 열정, 헌신...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신을 소개하는데... 이건 당시 자랑거리로 명함에 기록할 내용과는 정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매 맞고, 굶주리고, 파선하고, 전쟁에서 성벽을 타고 넘어가서 성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거꾸로 바구니에 달려서 성을 탈출하고 .... 누가 봐도 이건 명함에 쓸 내용이 아니라 감추기에 급급한 내용 같은데요.

핵심은 30절입니다. “꼭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왜요? 예수님이 그러하셨으니까요. 예수님은 창조주요, 당신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오셨건만, 가장 연약한 인간 아기로 태어나셨고, 인간의 모든 고통을 직접 몸으로 겪으셨고,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선택하신 방법이 채찍 맞고,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시는 것이었으니 말이에요.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소서...”라는 고뇌와 “하지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결단에 이르기까지를 잘 알기에, 바울도 “모든 것 다 제쳐두더라도 여러분들을 향한 염려로 인해 내 마음이 이토록 무겁고 힘들고 애탄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자랑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바울의 자랑, 그 속에 담긴 역설, 그 비장함, 복음에 대한 열정, 헌신... 그저 그 묵직함과 감동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고린도 문화와 너무나 닮아있는데요... 세상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 안에서는요? 교회 안에서는 바울처럼 나의 연약함을 자랑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자랑 자체를 할 게 뭐가 있을까요? 그저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할 일을 하였을 따름입니다.”라는 고백만 있으면 되는 것이죠. 교회 안에서도 판, 검사가 대접받고, 장관님, 사장님, 회장님, 교수 명함이 교회직분으로 교환되어서야... 담임목사도 외국에서 받은 박사학위가 있어야 대형교회 청빙을 받고, 또 그래야 거기에 걸맞은 연봉을 받고...

어제 묵상한 본문에서 바울이 그랬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여러분에게 전하면서 아무 사례 없이 여러분을 섬겼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내가 큰 실수라도 저질렀습니까? 이와 관련해서 나는 내 입장을 바꾸지 않을 작정입니다. 여러분의 돈을 받느니 차라리 죽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서도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자처하는 설교자들과 나를 한통속으로 취급할 빌미를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The Message, 고후11:7-15)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럽니다.

“굳이 나 자신을 자랑해야 한다면, 나는 내가 당한 굴욕을 자랑하겠습니다.”(The Message)

한편, 아직도 이 땅의 수많은 교회에서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례를 받고서도 묵묵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분들,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신을 내어드리며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분들의 헌신, 애씀, 눈물을 알기에 대놓고 모든 목사는 다 한통속이라고, 모든 장로는 다 썩었다고 욕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저는 언젠가 시골 교회에서 정말 어렵게 사역하시다 세상을 떠나신 목사님 장례예배에서 유족들에게 “아버님께서는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분이십니다.”라고 위로의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자녀들의 눈물을 기억합니다.

주님, 제 인생에서도 복음으로 인한 순전한 마음만이 자랑이 되게 하소서. 제 인생이, 우리 교회가 세상가치관과 방식에 휘둘리지 않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르는 걸 자랑하게 하소서. 바울의 이 고백이 평생의 심지가 되게 하소서. 언제나 자뻑이 심한 제 자신의 경향을 주님의 성령께서 늘 다스려 주소서.

[하창완] [오전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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