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교회는 '경쟁하는 못'이 아니다.
주님의 교회는 '경쟁하는 못'이 아니다.
  • 강호숙
  • 승인 2018.12.0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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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줄 사람 하나 없던 자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요 5 : 1-9)
Pieter Aertsen(1507~1575), The Healing of the Cripple of Bethesda(1575)
Pieter Aertsen(1507~1575), The Healing of the Cripple of Bethesda(1575)

베데스다에 38년 된 병자는 가끔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제일 먼저 내려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걸 유일한 희망으로 산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병자들이 제일 먼저 못에 들어가려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본문에서 38년 된 병자에 대해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첫째, 이 사람의 병은 무엇이었나? 둘째, 38년 동안 못에 들어가지 못해 거기에 살았었나? 셋째, 그 사람 주위엔 못에 들어가도록 도와줄 사람이 왜 없던 것일까? 그는 버려진 것일까?

예수께서는 병이 오랜 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고, 38년 된 병자는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38년 동안 병을 앓았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고통은 고사하고 고독함, 그리고 매번 경쟁에서 밀리는 패배감과 절망은 또 얼마나 컸을까?

나는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복음의 감격을 경험하게 된다. 첫째는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라는 38년 된 병자의 고백이 그를 찾아와 준 오직 단 한 사람 바로 예수님과 겹치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주님을 만나 울컥하는 경험은 '주님께서 나 같은 자를 찾아와 주셔서 만나주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아닐까.

두 번째는 38년 된 병자가 낫는 유일한 길은 '물이 동한 후에 못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그것과 상관없이 '낫고자 하는 희망'"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존한 믿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질병이 '죄의 결과'였다고 믿는 초기 유대교의 견해를 살펴보더라도, 예수께서 아무도 도울 사람이 없었던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셨다는 것은 복음이 아닐 수 없다.

본문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사실 교회 안에서 이런 경쟁의 모습은 비일비재하다. 남보다 더 열심히 봉사하며 헌금하고, 담임목사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주류는 '경쟁의 못'을 설정해 놓고 거기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목사의 말을 하나님 말씀처럼 크게 여기고, 병들고 가난한 교인은 교회 안에서도 냉대와 차별을 당하도록 방치하는 구조로 변질한 것은 아닌가?

38년 된 병자의 "아무도 도와줄 자 없어"라는 한탄이 교회 안의 모습으로 되돌아보면 좋겠다. 주님의 교회는 '경쟁하는 못'이 아니라, 아무리 부족하고 초라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이 엄청난 복음을 다시 들려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처럼 '아무도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자'를 대접해주는 곳이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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