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처지에 놓이는 것은 어색하다. - 양희송대표
받는 처지에 놓이는 것은 어색하다. - 양희송대표
  • 양희송
  • 승인 2018.11.29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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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면 되는데 .. " - 2
양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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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라 청어람아카데미도 후원 편지를 쓰는 중인데, 그 와중에 읽게 된 내용이다. IVF를 비롯한 여러 학생선교단체의 간사는 대부분 일정액을 스스로 모금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은 자신의 생존을 남의 선의에 의탁하도록 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 (나는 가끔 불교에서 스님들이 탁발하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본다. 세상에 내 능력으로 내가 산다는 것처럼 오만한 자세가 어디에 있을까? 모든 삶은 누군가의 선의와 인연으로 가능한 것이란 사실을 일깨우고, 특히나 종교를 업으로 하는 이들은 더더욱 그 사실을 새겨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런 의존적 상태가 만들어내는 무력증과 때로는 비굴함도 없을 수 없다. 이런 상태를 악용해서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이들은 세상에 많고도 많으니. 나도 여전히 이런 상황에 부닥치는 것은 어색하다.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보람이 있지만, 받는 처지에 놓이는 것은 어색하다. 모금을 해야 하는 것은 더욱 어색하다. 모금과 헌금의 귀재이신 김동호 목사님 곁에서 꽤 많이 보고 배웠으나, 나는 체질 개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하거나, 간질간질하게 하는 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무미건조함을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나는 안다. 후원을 받는 측이 겁나서 비굴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후원하는 이의 선의를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는 것.

그런 면에서 5년 전 청어람이 신촌으로 나올 때는 정말 일대 위기였다. 교회로부터의 모든 지원이 다 끝나고, 완전히 0가 되었는데, 외부 후원은 하나도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하소연도 엄살도 떨지 못한 채, 여전히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몸에 힘을 주고 있었으니. (함께 일하는 오 모 간사는 두려웠을 거고, 박 모 간사는 갓 합류한 상태에서 황당했을 거다) 겨우 할 수 있었던 말은, 객관적인 상황 묘사와 나름 애써서 후원해주시란 요청 정도. 당장 잔고가 0원이 되어가는데, 돌아보면 참 여유로웠다.

하지만, 고맙게도 그간의 청어람 활동을 통해 지켜본 분들이 좀 계셨다. 다들 교회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라, 일하려면 재정이 도는지 어찌하는지를 꿰뚫어 보셨고, 후다닥 후원들을 시작해주었다. 특히 그 무렵에 자기 십일조에 준하는 액수를 후원해준 이들이 몇 있었다. 사회생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자매 한 사람의 후원이 늘 기억난다. 매달 계산해서 보내오는 것이 확실했던 그 후원금. 그는 "청어람에 와서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으니, 나는 좀 더 뻔뻔해졌을 것이다. 매년 마지막 시즌에는 교회들에 후원 요청 편지를 보낸다. 이건 약간 공적 문서이니 훨씬 부담이 덜하다. 그래도 가능하면 징징거리지 않으려고 문장을 가다듬는다. 불쌍하게 보여서 후원을 받는 일은 아니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여전히 빠지지 않는 탓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후원을 받는 측이 겁나서 비굴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후원하는 이의 선의를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는 것. 올해는 규모가 작은 몇 교회들이 후원을 시작해주었다. 그런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우리는 고개도 넘고, 벼랑도 오르고 있으니 대단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이 글은 양희송대표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실린 글(https://www.facebook.com/heesong.yang/posts/10218402326515911)을 옮긴 것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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