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기도가 되는 때
노동이 기도가 되는 때
  • Huuka Kim
  • 승인 2018.11.26 2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이 기도되는 때가 있다.

자기 생각과 아집에 쌓여서 입술의 기도마저 자기를 위한 존재성을 드러낼 때, 과감히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 노동의 자리로 나아간다.

부서지지 않은 생각은 사물에 대한 진정한 관계를 스스로 단념한다. 반대로 부서지지 않은 마음, 곧 궁극적인 통찰을 통해 감시되지 않는 감정은 사유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그 마음은 깜깜하고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인 상태에서 자기를 위한 존재성을 내보인다. - 칼 바르트, 로마서, 복있는사람 (2017), p. 181

때마침 장날이다. 총각무 한 단이 이렇게 알 수가 적었던가. 8단을 샀다(총각무만 35천 원). 다듬고 절이고 버무리고, 사실 배추김치에 비하면야 일도 아닌 것을 노동이라 부르고, 그 노동을 통해 잠시 나의 생각을 비워낸다. 몇 시간 움직여 비워낸 머리 대신 몸으로 드리는 기도. 지금 이 순간이 노동이 기도되는 때이다.

긴급히 올리는 나의 간절함도,
선교지로 떠난 청년들을 위한 후방기도도,

3자녀를 둔 가정과 아픈 자녀를 둔 가정을 위함도
후원자들을 위해 드리는 매일의 기도도

나의 욕심이 앞서면, 나의 생각과 계획이 앞서면
이미 기도의 빛을 잃어버린다.

노동으로 비워낸 그 자리에
오롯이 그분으로 가득 차기를.

어둠이 차분하게 내렸다.
마주한 손, 꿇은 무릎에 겸손의 옷을 입혀주시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