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환] 진리가 무엇이냐?
[이택환] 진리가 무엇이냐?
  • 이택환
  • 승인 2018.11.2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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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환 목사의 설교 - 요 18:33-38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 1871), 안토니오 치세리(Antonio Ciseri: 1821- 1891)
안토니오 치세리(Antonio Ciseri: 1821- 1891),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 1871)

삼성그룹의 창업주 호암 이병철 전 회장이 1987년 폐암으로 사망하기 한 달 전, 가톨릭 신학자 정의채 신부에게, A4 용지 다섯 장 빼곡히 써서 보낸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부터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에 이르기까지 총 스물네 가지 질문이 그것이었습니다. 고인은 돈이 너무 많아 한때 돈병철이라 불렸는데, 그에게도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고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의채 신부가 답변을 준비해 만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서 다음번으로 그 기회를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그가 세상을 떠납니다. 향년 77.

차동엽,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명진출판사, 2012년
차동엽,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명진출판사, 2012년

그리고 25년이 지난 2012년 1월, 정의채 신부의 제자 차동엽 신부가 고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해서 <잊혀진 질문>(명진출판사, 2012년)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정작 그 책을 읽어야 할 주인공은 세상에 없는데 말이지요. 저는 이병철 회장이 생애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런 고민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일찍이 삶과 죽음, 신과 사후 세계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기업 총수로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워낙 많다 보니, 이런 질문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겠지요. 그러나 정작 세상을 떠날 때 가장 우선으로 해결해야 했던 문제가 바로 그 문제였습니다. 12장의 어리석은 부자가 생각납니다.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0-21)

만약 이병철 회장이 그때 다시 건강을 되찾아 정의채 신부를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신앙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100% 장담할 수는 없겠지요. 신부 또는 목사와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신앙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만난다 해도,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1세기 유대인 가운데 예수님을 만난 엄청난 행운의 소유자들이 많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빌라도입니다. 우리가 모두 장차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데, 빌라도는 세상에서 오히려 예수님을 심판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가 오늘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첫 번째 질문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였습니다. 당시 유대에는 두 명의 왕이 있었지요. 헤롯 안티파스와 헤롯 빌립. 모두 로마 황제에 의해 유대의 일부를 다스리도록 허락받은 분봉왕들 입니다. 빌라도가 말하는 유대인의 왕은 이들과는 다른, 즉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 낼 다윗의 후손 메시야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서두에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고 말합니다. ,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유대인의 왕’,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은데 중요합니다. ‘유대인의 왕예수가 아닌, 다른 예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요한복음 18장 뒷부분에서, 빌라도가 유월절 전례를 따라 사형수 한 사람을 놓아줍니다. 그때 백성들이 선택한 자가 바라바였습니다. 그는 단순 강도가 아닌, 로마제국에 항거한 폭력투쟁운동 지도자였습니다. 사본에 따르면 그의 이름이 예수예요. 그날 백성들이 선택한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가 아닌 바라바 예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유대인의 왕’, 메시야 예수를 선택해야 하는데, 때로는 엉뚱한 다른 예수를 선택할 때가 있지 않은가요?

빌라도의 두 번째 질문은 내가 유대인이냐?”였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므로 유대인의 왕이 메시야인지 아닌지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그런 말을 듣지요. “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단군의 자손이면서 자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소리를 하는가? 우리나라 왕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으면서, 엄한 이스라엘의 왕들을 주워섬기는가?”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 언약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아닌 우리가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을까요? 실은 유대인이라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지요. 그리고 오늘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구원의 약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성경의 구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단지 재미를 주는 책, 또는 목사들의 설교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책이 말하는 구원의 이야기 속으로 우리가 들어가, 그 이야기의 일원으로 참여해야 할 책입니다그렇게 해서 성경의 구원 이야기가 바로 나의 구원 이야기가 될 때, 우리가 비로소 구원의 감격을 누립니다. “내가 유대인이냐?” 로마인 빌라도가 유대인이 아니듯이 우리도 당연히 유대인이 아닙니다. 굳이 유대인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며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말한 것처럼(2:28-29),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사람들이 진짜 유대인, 새 이스라엘, 다시 말해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빌라도의 세 번째 질문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셨고, 기적을 베푸시고,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사역의 일환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예수님은 그 나라가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36,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저세상의 나라, 즉 우리가 죽어서 가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서 비롯된 나라, 영어로 “kingdom which is came from the world”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처럼 세상에서 비롯된 나라들은 늘 세상의 방식을 따라, 인간의 권력과 힘과 재물을 의지하지요.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서 비롯된 세상 속의 나라였다면, 예수님이 체포당할 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이를 막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Munkácsy Mihály(1844-1900),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 1896)
Munkácsy Mihály(1844-1900),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 1896)

실제로 제자들 가운데 단검을 뽑아서 적들과 맞서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리셨지요. 하나님 나라가 칼로 일어서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속했는지 세상에 속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교회가 세상과 똑같이, 때로는 그보다 더욱 인간의 권력과 힘과 돈을 의지하는가? 아니면 그로부터 일말의 자유로움이 있는가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위기가 오면 드러납니다. 많은 교회가 위기의 순간에 권력 다툼과 재산 분쟁의 장으로 돌변합니다.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서 결국 세상의 법정이 결론을 내려줄 때까지 그 추한 싸움을 멈추지 않습니다이 세상에서 권력과 힘과 부를 의지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너무나도 낯선 나라입니다. 당장 빌라도가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라는 말이냐?” 빌라도의 이 네 번째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37b,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왕,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 나라는 권력과 무력과 재물이 아닌 오직 진리에 의존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진리를 위해 태어나셨고, 그 진리를 전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진리의 음성을 듣고, 그 진리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음성을 듣고 누구의 말에 순종합니까?

빌라도가 놀라서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비웃음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짧은 순간이나마 진리에 대한 그의 갈망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진리를 외칩니다. 세상에서 진리를 가장 크게 외치는 곳은 대학입니다. 하버드대 진리’(베리타스), 예일대 빛과 진리’(우림 베 둠밈), 칼텍/연세대(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서울대(진리는 나의 빛, 베리타스 룩스 메아), 고대(자유, 정의, 진리), 등등 오늘날 많은 대학이 구호 속에서는 진리를 크게 외칩니다. 그러나 정작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 묻기라도 했는데, 대학은 더 이상 진리에 관해 묻지 않습니다. 교회는 과연 다를까요?

그날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 단지 질문만 던지고 예수님에게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나는 예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라고 말합니다. 나름대로 예수님을 변호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진리를 지키지 못하고 진리를 저버린 행위였습니다. 그는 진리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눈앞에 대하고서도, 귀한 진리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단지 진리가 무엇이냐?” 메아리 없는 질문만 던지고 말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진리를 붙잡아야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에겐 진리에 대한 진지한 갈망이 없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고 이병철 회장은 진리를 갈망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늦었습니다. 진리를 탐구하고 진리를 위해 투신하는 일은 아무리 서둘러도 결코 빠른 것이 아닌데, 시간이 항상 있을 줄 알았지만, 언제라도 다음 기회가 또 있을 줄 알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오늘은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입니다. 교회력이 끝나는 주일이지요. 성령강림 주일 후 무려 스물일곱 번이나 주일이 지났습니다. 어떤 교단은 성령강림 주일이 너무 길다고, 중간에 창조절을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강림 주일이 긴 것 같아도 긴 게 아닙니다. 결국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끝이 오기 때문입니다. 오늘처럼 말이지요. 종말도 그렇게 올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넘쳐 남아돌 때에, 자신이 무슨 왕인 줄 알고 큰소리치면서 삽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많던 시간이 안개처럼 다 사라져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인생의 주인이 내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교회력을 마감하는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이 주는 귀중한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제시된 빌라도의 질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묵상하고, 예수 그리스도, 그 귀한 진리를 꼭 붙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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