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인형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 정재경
  • 승인 2018.11.21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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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별글, 2018년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별글, 2018년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별글, 2018년

"인형의 집"(Et Dukkehjem, A Doll House, 1879년)19세기 노르웨이 극작가이자 시인인 입센(Henrik Ibsen)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극작품입니다.

주인공 노라는 은행가인 그의 남편 헬메르에게 사랑받는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다. 여기서 우린 주인공 노라를 통해서 가정, 사회, 도덕과 같은 그 어떠한 체제와 강제 안에서 자란 인형과 같은 다른 말로 말하면, 세뇌된 개인을 발견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나 자신에게 다시금 눈길을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19세기 말의 도덕관념으로, 페미니즘적이다, 가정 해체적이다, 반도덕적이다 라는 등의 평을 들으면서 많은 이들의 반대를 받은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노라이즘"(Noraism)이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영향을 가진 이유가 있다. 인형에 불과한 노라가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안락한 삶, 환경, 사회로부터의 인정을 내던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치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처럼.

우린 혹여나 사회, 체제, 종교, 도덕, 가치의 "인형"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문득 질문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여러모로 질문, 생각으로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물론, 극 중 "노라"도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인형으로서 자신의 본분, 의무를 다합니다. 그러다가 한 비극, 위기를 겪고 그때 자신에게 눈길을 돌리게 되고 집을 뛰쳐나옵니다.

“당신은 늘 나한테 아주 친절했어요. 그렇지만 우리 집은 놀이방에 불과했어요. 내가 친정에서 아빠의 인형 같은 아이였듯이 이곳에서 나는 당신의 인형 같은 아내였어요.” 

오늘날, 아픔이나 슬픔이 많은 곳/시간에서 발견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역설적으로 오늘날만큼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개인을 돌아보는 시대가 있겠냐고 질문이 들 정도로 우린 과감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여러 "인형의 집"에서 도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부디 나를 그리고 서로를 발견하는 노라들이 많아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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