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란 지식이 아닌, 생각하는 방식이며 삶의 태도
과학이란 지식이 아닌, 생각하는 방식이며 삶의 태도
  • 정한욱
  • 승인 2018.12.06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재훈, 과학자들 1,2,3, 휴머니스트, 2018년
김재훈, 과학자들 1,2,3, 휴머니스트, 2018년
김재훈, 과학자들 1,2,3, 휴머니스트, 2018년

우리가 창조해낸 세계는 곧 우리가 생각하는 과정이며,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서 세계는 변화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김재훈 작가가 펴낸 세 권 짜리 교양과학서이다. 근대 이전의 과학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DNA의 발견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비운의 여류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역사를 빛낸 52명의 거인들과 그들이 도달한 과학기술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만화의 형식에 담아 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부제를 가진 1권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 등 과학이라는 학문을 태동시키고 이론을 만들어 낸 13명의 과학자를 다루고, “모든 것은 빅뱅에서 시작되었다”는 부제를 가진 2권에서는 패러데이, 맥스엘, 아인슈타인, 팬지어스와 윌슨 등 현대물리학의 새 장을 연 과학자 17명을 소개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정체를 밝혀내다”라는 부제를 가진 3권에서는 보일, 라부아지에, 린네, 다윈 등 생명에 관해 연구하고 미시 세계의 입자를 연구한 과학자 22명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세계의 원리와 현상을 이해하는 자신들의 방식을 알리기 위해 지난한 투쟁의 세월을 겪고 끝내 학문의 주역이 된 이들의 연대기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과연 저자의 말대로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당대를 지배했던 종교적 세계관이나 위대한 선학의 가르침 및 주류 이론에 맞서 천재적인 직관과 집념어린 연구뿐 아니라 때로는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혁신적인 이론을 입증해 나간다.

이들의 모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과학이란 자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자 삶의 태도”라는 이정모 관장의 말이나 “우리가 창조해낸 세계는 곧 우리가 생각하는 과정이며,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서 세계는 변화하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에도 저절로 고개가 끄떡여질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과학자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나 데모크리토스,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르네 데카르트와 같이 ‘과학적’ 사고방식의 발전과 정립에 기여한 철학자들의 이름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여러 과학자들이 주고받은 생각과 서로에게 끼친 영향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때로는 서로를 응원하고 협력하는 동료나 후학을 위한 든든한 후원자였고, 때로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경쟁하는 라이벌이나 치열하게 논쟁하는 논적이었던 여러 과학자들이 협력과 경쟁과 논쟁과 질투의 와중에 좀 더 진리에 근접한 가설로 접근해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짜릿한 스릴과 쾌감을 선사한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과학적' 과정뿐 아니라 각 과학자들의 성품이나 개인사까지 유려하고 섬세한 일러스트 안에 성공적으로 담아냄으로써 텍스트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을 독자에게 전해 주며, ‘지식’과 ‘재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전에도 한번 언급한 바 있지만 잘 쓰여진 과학사 책은 단지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책일 뿐 아니라, ‘우정’과 ‘연대’에 관한 책이자 '갈등'과 ‘투쟁’과 ‘혁명’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과학이었던 적이 없었을 뿐더러 백번 양보해서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흘러간 물이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는 법

3년여의 시간을 들여 과학사의 명장면과 그 장면을 만들어 낸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세련되면서도 유머러스한 만화 안에 녹여 낸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저자가 원래 과학에 문외한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 높고 충실하다. 과학자들이 이룩한 위대한 성취와 20세기 교양인이 반드시 알아야 할 과학상식뿐 아니라 과학적 사고와 태도란 어떤 것인지까지 잘 보여주는, “인물로 살펴보는 만화 서양 과학문명사”이자 일반인을 위한 수준 높고 흥미로운 과학교양서로 적극 추천할 만하다. 아, 그리고 혹시 이 글을 읽으며 "창조과학"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건 원래 과학이었던 적이 없었을 뿐더러 백번 양보해서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흘러간 물이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