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환] 그때의 징조를 분별하라
[이택환] 그때의 징조를 분별하라
  • 이택환
  • 승인 2018.11.18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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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환 목사의 설교 - 막 13:1-8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락, David Roberts

세계 종말의 분위기를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7~80대 이상 되신 분들은 6.25 한국 전쟁 때, 나라가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종말의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50대라 그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소위 국가 부도가 난 1997IMF 때에도, 이미 직장을 떠나 신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만 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겠지만 19921028,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예언한 다미선교회의 휴거 해프닝 때는, 무서운 종말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2001911TV 속보에서 두 대의 항공기 테러에 의해, 110층짜리 미 무역센터 건물이 불에 타 무너지는 장면을 보았을 때, 비록 먼 나라에서 발생한 일이지만 순간적으로 세상의 종말이 떠올랐습니다. 단순한 고층빌딩이 항공기 테러로 무너졌다고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 미 무역센터는 그냥 단순한 고층빌딩이 아니지요. 세계 자본의 중심지인 뉴욕, 그중에서도 그 센터를 상징하는 건물이었으니까요. 이미 공산주의가 패망한 오늘날, 자본주의의 중심 센터가 무너졌다는 것은 곧 온 세상이 무너졌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그때 3차 대전이 일어날 분위기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2000년 전, “장차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오늘 2절 예수님의 말씀도, 당시 제자들에게는 세상 종말의 이야기로 들렸을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지요. 온 우주를 다스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처, 즉 우주의 중심지였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성전 붕괴는 곧바로 우주의 종말을 의미했지요.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9.11 테러로 미 무역센터가 완전히 붕괴하여 말 그대로 그라운드 제로가 되었던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이 기원후 70년 로마의 침공으로 파괴되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30여 년 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준 말씀입니다. 그날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한눈에 보이는 감람산에 올라가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습니다. 성경에서 감람산은 특이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령 스가랴 14장에서는 종말의 때에, 하나님께서 임하시어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수님은 지난 3-나흘 동안 감람산 기슭 베다니에 머물면서, 아침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 마치 성전을 심판이라도 하시듯,

성전정화 사건 외에도 성전 관계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저녁이면 다시 베다니로 물러나셨습니다. 이제 제4일 째 저녁, 성전을 나선 예수님은 감람산 위에 좌정하시어 산 아래 성전을 굽어보셨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나아와 조용히 묻습니다.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요한계시록에 견주어 소위 신약의 소 묵시록이라고 불리는 마가복음 13, 예수님의 종말론 설교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날 제자들의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 언제 성전이 멸망할 것인가?” 둘째 그 때에 어떠한 종말의 징조가 있을 것인가?”, 때와 징조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때의 문제에 관해서는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대신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13:32)고 하셨지요. 예수님이 모르셨다기보다, 미래를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 허용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태평하게 사는 것이지, 미래를 알면 한 시도 편안하게 살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암으로 죽기도 하고, 또 치매로 죽기도 합니다. 끔찍한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다 알고 있다면 지금 제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좋은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잘 될 것을 알고 있다면 아등바등 살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최선을 다할 것도 없고, 매사에 설렁설렁할 것입니다. 미래를 모르는 게 복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징조를 분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세메이온, 징조)은 분별할 수 없느냐(16:2-3)?” 질책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대를 잘 읽어야 합니다. 구한말 한국 기독교 선각자들은 나름 시대를 잘 읽었습니다. 그들은 조국의 미래가 교육과 의료와 여성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짓고, 많은 여성이 나아 온 교회가 한국 기독교 초기 100년간 우리 사회의 등불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기독교는 시대를 읽는 눈이 어둡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의 미래를 단지 반 통일, 반 동성애, 반 이슬람에서 찾습니다. ... 중략 ... (편집자 주, 민감한 내용이 있어서 이 설교자가 생략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장래가 어두운 이유지요.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붕괴하는 종말의 징조에 대해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그때 거짓 메시야가 나타날 것이나, 주의하여 미혹 받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5~6)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기원후 70년 어간에 스스로 왕관을 쓰고 메시야 행세를 한 사람이 다수 출현했다고 합니다. 그중에 갈릴리 유다의 아들 므나헴, 시몬 바 기오라 등이 유명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야, 로마인의 압제에서 건져 줄 구원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이 무장봉기를 통해 로마를 몰아낼 수 있다고 장담했지요. 많은 사람이 그들의 카리스마에 미혹되어, 폭력적인 유대 독립전쟁에 가담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다행히 기독교는 그들과 다른 길을 갔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로 난리와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7-8a)

성전멸망과 관련하여 기원후 66년 유대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4년 뒤 로마 장군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킵니다(70). 그는 성전 보물들을 모두 로마로 가져가고, 성전 건물은 불태웠습니다. 말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성전이 붕괴하였지요. 그때 열심당 지도자 엘리에젤 벤 야일이 소수 병력을 이끌고 마사다로 도주하여 3년간 항전을 벌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960여 명의 비극적인 자살로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지요. 하지만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새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종말의 징조는 지진과 기근입니다.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8b)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는채 죽은 폼페이 시민

기원후 61년에는 라오디게아에서, 62년 폼페이에서 대지진이 있었으며, 79년에는 소위 폼페이 최후의 날을 가져온 베수비오스(Vesuvius) 화산의 폭발이 있었습니다. 70년대에는 고린도와 구브로에서도 대지진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근은 기원후 46년에 유대 땅에서 발생한 적이 있었고, 60년대 말, 네로 통치 말기에 로마제국 전체적으로 식량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모든 징조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7). 거짓 메시야의 출현, 전쟁과 난리, 지진과 기근, 심지어 성전이 붕괴할 때조차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또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똑같이 고난이 올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 나오는 성전 붕괴와 관련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겪게 되는 고난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출범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태어나는 일종의 산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13장 소 묵시록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또 오늘날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고난 속에 숨어 있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주어진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믿음이 흔들리는 큰 고난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힘 얻으시기 바랍니다. 난리와 전쟁과 같은 삶을 날마다 살아가는 분이 있다면,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삶의 기반이 흔들이는 인생의 지진과 궁핍으로 신음하는 사람은, 조금 더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새날을 열어 주시는데, 실은 2000년 전 예루살렘 성전 붕괴와 함께 이미 새날이 열렸습니다. 그때 탄생한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가 교회지요. 교회가 고난 겪는 이웃에게 힘과 소망과 인내를 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회 자체의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시고, 교회는 그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서로에 대하여, 그런 힘과 소망과 인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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