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를 판단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다
가해자를 판단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다
  • 김영웅
  • 승인 2018.11.15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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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 책과일상 - 강남순, 용서에 대하여, 동녘, 2017년
강남순, 용서에 대하여, 동녘, 2017년
강남순, 용서에 대하여, 동녘, 2017년

가해자보다 우위에 서서 가해자를 판단하고

가해자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것처럼 이해하고 있었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존 바턴의 “온 세상을 위한 구약 윤리” 다음으로 읽어서 그런지 존 바턴이 강조했던 '자연법’이라는 개념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이 이 책 “용서에 대하여”에서도 나에겐 읽혀졌다.

진정한 용서는 단지 신의 명령에 순종함도 아니고 조건적이지도 않다. 책 전체에 흐르는 자크 데리다의 용서에 대한 사유가 말해주듯, “진정으로 가능한 용서는 불가능한 용서”라는 말이 내겐 첨엔 아이러니하게만 들렸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며 내 가슴에 깊이 박혔다. 여러가지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여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행하는 사랑의 행위 정도로 난 용서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엔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당한 그 특정한 사건을 통하여 갑자기 위상이 뒤바뀌어 (심지어 난 그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마치 판사가 재판 결과를 선언하듯, 마치 갑자기 가해자보다 우위에 서서 가해자를 판단하고 가해자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것처럼 이해하고 있었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무조건적인 용서와 조건적인 용서, 즉 용서의 윤리와 용서의 정치 사이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속하여 이상적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무조건적 용서를 추구하는 것. 이것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이 없인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불완전한 피조물인 인간. 그래서 실수를 할 수 밖에 없고 그 결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용서와 마주할 수 밖에 없는 프레임 속에 갇힌, 그렇다, 우리는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을 왔다갔다하며 얽히고 섥혀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도 지녔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즉 존 바턴이 얘기한 인간의 존엄성이 용서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는 점을 난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용서는 앞서 얘기했듯이 누군가의 명령이나 해야만 하는 의무라고만 해석해서도 안된다. 그건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공동체들 사이에 무언으로 존재하며 동시에 모두가 선행 학습 없이 인지하고 있는, 마치 C.S. 루이스가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선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이나 ‘도덕률’과도 같은 것이다. 또 마치 존 바턴이 강조했던 ‘자연법’과도 같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비단 용서라는 개념은 기독교와 같은 종교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진정한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는 본문 속의 문장도 맘에 와닿았다. 이어서 “값싼 용서”라는 가슴 아픈 용서에 대한 오용에 대해서도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내겐 한편으론 기독교인으로서 내가 받은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점을 상기할 때, 그리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아무렇게다 살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소위 칭의와 성화의 개념을 따로 떼어놓는 식의 믿음과 구원에 대한 오용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사용한 “값싼 은혜”라는 개념과 함께 “값싼 용서”를 사유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은혜라는 것이 수혜자의 공로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진정한 은혜는 진정한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진정한 용서는 진정한 은혜”라는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복음의 핵심은 용서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내가 받은 구원이 하나님의 진정한 선물이자 진정한 은혜라는 사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진정한 용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할 수 있어서 아주 나에겐 유익한 책이었다. 좋은 책을 써주신 강남순 교수님께 감사를 뒤늦게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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