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설교와 교육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교회 안의 설교와 교육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 강호숙
  • 승인 2018.11.1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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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문
먼동이 트는 새벽녘의 사해 ⓒ김동문

나는 중1 때부터 예수를 믿으면서 20~30대에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살았다.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예배와 봉사, 아파트 방문 전도 등, 힘에 부치도록 모든 신앙적 열정과 헌신을 쏟아 부었다. 교회에서 내가 있어야 할 때면 거절하지 않고 응했다(반주자 대타는 나의 특기였다).

그러다 신앙적 탈진과 일명 '영적 침체'가 찾아왔다. 서서히 신앙적 열정도 사라지면서 교회 일을 많이 못 하게 되었다. 내가 출석하던 교회는 처음엔 기도도 해주더니, 점점 나를 귀찮아하며 싸늘한 눈초리를 보였다. 나는 그때 교회는 '쓸 데 있으면 맘껏 쓰고, 쓸데없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곳'이라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교회밖에는 모르며 일편단심 지탱해 온 '교회 중심적인 내 신앙'이었다. 교회 안에서만 살아온 나는 교회 밖 친구들도 별로 없었다. 놀러 다녀 본 적도 없었다. 교회 밖의 경험은 신앙적으로 해가 된다고 여겼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하나님이 주신 자연 세계의 신비하고 아름다움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꽁꽁 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피조세계인 자연을 보면서 인간을 생각하고,
인간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일은,

일상 신앙에서 비롯된다.

그때 겪은 교회의 이기적이고 냉담한 모습을 보면서 신앙적 박탈감과 황망함이 얼마나 힘들고 암담했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신앙적 번뇌와 끝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질 것만 같은 두려움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비로소 '교회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맛보게 되었다.

꽃 하나, 풀 한 포기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의 섭리를 느꼈다. 가족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때도, 잔잔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에녹이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는 말씀에서(5:22), 일상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하나님의 피조세계인 자연을 보면서 인간을 생각하고, 인간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일은, 일상 신앙에서 비롯된다.

교회 안의 설교와 교육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교회 일에 대한 충성과 봉사만 강조할 게 아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서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맛보는 하나님의 잔잔한 사랑과 돌보심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그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안목이 열리고 따스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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