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페미니즘을 인물과 논쟁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서구 페미니즘을 인물과 논쟁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 정한욱
  • 승인 2018.07.0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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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체 슈룹,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 파투 그림, 숨쉬는책공장, 2016년
안체 슈룹,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 파투 그림, 숨쉬는책공장, 2016년
안체 슈룹,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 파투 그림, 숨쉬는책공장, 2016년

주말에 서점에 들렀다가 일전에 청어람 아카데미 담벼락에서 눈에 담아 둔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를 만나 잠시 살펴본 후 바로 지갑을 열었습니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페미니즘의 중요한 흐름을 인물과 논쟁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체 88쪽에 불과하지만, 알찬 책이었습니다. 심플하고 깔끔한 표지가 눈에 확 띠었고, 부피가 크지 않은 데다 심지어 만화라는 점도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저자는 많은 문화권에서 남성들이 ‘인간 자체’와 동일시되는데 반해, 여성은 ‘파생되거나’ ‘부족하거나’ ‘하위의’ 존재로 취급받아 왔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부장제 사회에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거부하고 여성의 자유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태도, 즉 페미니즘이 존재해 왔다고 강조합니다. 페미니즘이란 세상 모든 곳에 존재했고 존재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고대, 중세, 근대, 계몽시대, 초기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을 거쳐, 직업노동의 더 나은 기회와 고전적 결혼에 대한 비판 및 참정권에 대한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여성운동의 “제1의 물결”로 부터 시작합니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체적 자기결정권과 가정폭력에 대한 고발 및 양육과 가사노동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특징으로 하는 “제2의 물결”을 지납니다. 남성들의 반격(백래시)과 포스트페미니스트의 등장에 대한 반응으로 1990년대에 생겨난 “제3의 물결”에 이르기까지, 서구 페미니즘이 걸어온 길과 전개과정, 그리고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던 선각자들 - 대부분이 여성인 - 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지위와 권리, 정치적 노선과 여성 연대, 평등 페미니즘과 차이 페미니즘, 젠더와 메인스트리밍 등과 같이 페미니즘과 관련되어 벌어졌던 중요한 논쟁을 각각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설명합니다.

저자는 페미니즘이란 항상 그 시대의 문제 및 관련 사상가의 주관적 사고와 관점에 의해 규정되기에 다양하고 대립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을 지적합니다. 고정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강령이라기보다 ‘여성의 자유’라는 범주를 기본 방향으로 삼는 하나의 태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페미니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새로운 제안, 연구결과, 그리고 지식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단 하나의 깔끔하게 정돈된 모범답안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혼란스럽고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다양성이 내뿜는 유쾌함과 아름다움을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된 이 분야의 관심자들에게는 실망시키지 않는 좋은 입문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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